과거 제도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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작성일 22-12-13 09:36본문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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1차시험에서는 중앙(개경)에서 선발한 자를 상공(上貢), 지방에서 선발한 자를 향공(鄕貢), 외국인 중에서 선발한 자를 빈공(賓貢)이라고 하였다.
이와 …(skip)
과거 제도에 대한 글입니다.
처음에는 매년 과거를 실시했으나 성종 때에는 3년[式年試]에 한번씩 실시하였고, 현종 때에는 격년으로, 그 후에는 매년 또는 격년으로 실시하였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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그러나 천민이나 승려의 자식은 응시할 수 없었다.과거제도 , 과거 제도인문사회레포트 ,
후주인(後周人) 쌍기(雙冀)의 건의로 958년(광종 9) 당나라 제도를 모방하여 창설하였고, 성종(成宗) 때 합격자를 우대하였다.
합격자에 정원은 없었으나 중기 이후 대체로 33명이었다.
초기의 과거시험은 제술과(製述科:進士科)·명경과(明經科)·잡과(雜科:醫卜科)를 두었으며, 1136년(인종 14)에 이르러 정비되었다. 응시 절차는 3차에 걸쳐 시험을 보게 하였다.
과거의 응시자격은 양인(良人) 이상이면 응시할 수 있었다.
이 밖의 과거에는 승과(僧科:敎宗試와 禪宗試)가 있었으며, 무신(武臣)의 등용을 위한 무과(武科)는 1390년(공양왕 2)에 실시하였기 때문에 고려시대에는 effect을 주지 못하여 거의 없었다.
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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다.
제술과와 명경과는 문관 등용시험이었으나, 제술과를 더욱 중요시하였다. 고려시대를 통하여 제술과의 합격자 수가 6,000여 명이나 되는데 비해 명경과 합격자는 450명 정도인 것으로도 알 수가 있다
이 점은 당시의 귀족들이 경학(經學)보다 문학을 숭상했음을 이해할 수 있다
그리고 잡과는 위의 양과 보다 그 격이 낮았다.
양인 이상은 응시할 수 있었다고 하지만 농민은 사실상 응시하지 못하였다.
2차시험은 1차시험에 합격한 삼공(三貢:상공·향공·빈공)들을 국자감(國子監)에서 다시 선발(국자감시:재시), 이에 합격한 자[貢士]와 국자감에서 3년 이상 수학한 학생, 벼슬에 올라 300일 이상 경과한 자들이 최종시험인 3차시험[東堂監試]을 보게 하였다.
합격자는 제술과는 갑(甲)·을(乙)의 2과로, 명경과는 갑·을·병·定義(정의) 4과로 나누었다.